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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 벤픽후닫 이용후기

라일락

2023-06-26
  • 702 reads
  • / REVIEW

‘갈 곳 없는 너를 받아 줄 테니 내 여자나 돼.’

롤 벤픽후닫여지는 없었다.

황제는 다 이긴 판이 뒤집히길 원치 않았다.

로제는 피식, 하는 웃음을 내비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들었다.


“폐하는 참으로 겁이 많으십니다.”

낭랑한 목소리가 황제의 귀에 꽂혔다.


“이리도 몸을 사리실 줄은 몰랐습니다.”

도발하는 듯한 로제의 말에도 황제는 입꼬리만 비죽이 올릴 뿐이었다.


“그딴 방법으로 짐을 도발하려 들지 말게. 자네의 수는 훤히 다 보이니까.”

“도발로 생각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저 제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뿐이니까요.”

로제와 황제의 두 눈이 공중에서 맞부딪쳤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황제였다.


“그래. 자네가 원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황제가 못 이기는 척, 입을 열었다.


“루카스의 묘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내 그리하겠네. 원칙적으로 죄인의 묘는 만들지 않지만, 넓은 아량을 베풀 수는 있네.”

“게임은 제가 제안하죠.”

로제는 황제의 말을 깡그리 무시한 채, 제 할 말을 했다.


“폐하께서 거신 조건이 말도 안 된다는 건 잘 아시겠죠.”

양심이 있다면, 잘 알겠지.


“겁먹지 마세요. 그리 어려운 게임은 아니니까.”

로제는 황제를 향해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갔다.

***

네르안이 초조하게 서 있었다.

그는 갑옷에 투구까지 쓴 채 로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여나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대비를 한 것이다.

네르안은 죽은 부모를 꼭 빼닮았다.

머리카락 색을 붉은색으로 바꾸었지만, 이목구비까지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름의 대비를 한 네르안은 마차 앞에서 서성거렸다.


‘왜 안 나오시지?’

들어간 지 꽤 오래 지났지만, 로제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바싹 타오르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하염없이 안을 바라보았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네르안의 머릿속에 차갑게 쓰러져 있는 로제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나 그것도 잠시, 네르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무슨 불길한 생각을 하는 거야.’

초조하게 발을 구르고 있는 네르안, 그의 동공이 순간 커졌다.


‘나왔다!’

로제가 나온 것이다.

초조했던 네르안의 얼굴이 금세 펴졌다.

네르안은 곧장 로제를 마중 나갔다.


“로제 님!”

저 멀리서 네르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로제가 고개를 들었다.


“네르안.”

로제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네르안을 발걸음을 재촉했다.


“별일 없으셨습니까.”

네르안은 로제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네. 괜찮았어요.”

대답하는 로제의 표정이 꽤 밝아 보였다.

비장하게 저택을 나서던 아침과는 꽤 상반되는 표정이었다.

로제가 시카고르의 일로 황제를 압박한다고 했을 때, 네르안은 그 계획을 반대했었다.

황제는 황궁에서 무려 3명을 죽인 사람이었다.

선 황제와 선 황후, 그리고 제 부인까지.

제 목표를 위해서라면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드는 불같은 성격 때문에, 언제나 신중을 가해야 했다.

일전에 다이애나 황녀의 독살 미수 사건 때, 로제는 황제를 도발한 적이 있었다.

독의 원료로 쓰이는 ‘시클라멘 꽃’을 언급하는 것은 물론, 생체 실험을 당하는 죄수들의 은어인 ‘시카고르의 광명’까지 황제의 눈앞에서 발설했다.

로제는 생체 실험에 관한 내용을 흘리고도 용케 살아남았다.

황제가 어영부영 넘어간 것은 절대 아니었다.

바로 세드릭. 그가 황제의 책망을 피하고자, 로제의 발언을 무마시켰다.

당시 로제의 이미지는 아둔하기 그지없었다.

세드릭은 백치 같은 로제의 이미지를 이용해 황제의 의심을 가라앉혔다.

비밀은 새어나가지 않았고, 로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정말 꽃이 보고 싶어서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을 한 거라고 말이다.

당시 황제는 세드릭의 이간질로 인해 플리체 공작에게 더 집중하고 있었다.

세드릭의 말처럼, 플리체 공작이 저를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지금은 달랐다.

한 번 더 로제가 시카고르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황제는 분명 로제를 죽이려 들 터였다.

네르안은 눈앞에 있는 로제를 바라보았다.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나온 로제의 모습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네르안은 로제를 에스코트해 주며 마차에 올라탔다.

네르안과 로제는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마주 보고 앉았다. 네르안은 그제야 투구를 벗었다.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머리카락이 온통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는 투구를 옆자리에 내려놓고는 로제를 향해 물었다.


“협상은 잘하셨습니까?”

“음…….”

로제는 네르안의 말에 쉽사리 대답하지 않고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로제는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협상은 안 했어요.”

“네?”

협상하러 갔으면서 협상을 안 했다니.

알 수 없는 로제의 말에 네르안의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글쎄, 황제가 아주 황당한 요구를 하더군요.”

네르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황당한 요구라니. 대공 전하를 살려주는 대신 로제 대신 죽으라는 요구라도 한 걸까?’

“저보고 정부가 되어달라고 하더군요.”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던 네르안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뭐 그런 미……!”

육두문자를 내뱉던 네르안은 마차의 천장에 쾅, 하고 부딪혔다.


“악!”

머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분노가 먼저 앞섰다.

네르안은 다급히 자리에 앉아서 불같이 화를 냈다.


“황제가 아주 노망이 났나 봅니다!”

로제는 자기 대신 화를 내주는 네르안의 모습에 괜스레 속이 시원해졌다.


“협상은 못 했지만…… 적당히 압박도 줬고, 무사히 빠져나왔으니 이번 작전은 성공이에요.”

씩씩거리던 네르안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로제를 바라보았다.

황제와 독대한 로제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

한편, 황제는 로제가 나간 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채 5센티도 안 될 법한 초록색 꽃줄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줄기를 만지작거리는 황제의 표정은 꽤 복잡해 보였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황제는 로제가 제안했던 말을 떠올렸다.


 


‘식물의 줄기입니다. 이 식물은 특정 지역에서만 자라는 꽃인데, 폐하께서 이 식물이 무슨 식물인지 알아내 주시죠.’


‘그게 다인가?’


‘아뇨. 이렇게 쉬우면 너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식물학자를 부르면 무슨 꽃인지 금방 알아낼 수 있지 않으십니까. 무슨 식물인지 알아내고, 그 지역에 거주하는 자를 세 명만 데려와 주시죠. 기한은 이틀. 이틀 안에 데려오셔야 합니다, 폐하.’

 
도통 알 수 없는 게임이었다.

황제는 식물학자에게 로제가 준 줄기를 건넸다. 그리고 이 식물이 무엇인지 알아내라고 명령했다.

얼마지 나지 않아, 식물학자가 줄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래. 알아내었는가?”

“예, 폐하. 이것은 시클라멘 꽃의 줄기입니다.”

“!”

시클라멘 꽃……!

황제는 식물학자에게 건네받은 줄기를 툭, 하니 떨어트렸다.

세드릭이 죽고…… 시카고르가 잘 관리되고 있던가?


“젠장……!”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황제는 호위를 이끌고 곧장 시카고르로 달려갔다.

시카고르에 도착한 황제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했다.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곳을 지키는 병사도, 그리고 생체 실험을 당하는 죄수도.

분을 참지 못한 황제는 두 눈이 시뻘게진 채, 고성을 질렀다.


“으아아아!!”

꼭꼭 숨겨 왔던 추악한 진실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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